스타성 높은 배우가 출연하지 않음과 동시에 신인 감독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칸 영화제에 초청받은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는 등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는 영화 오피스는 '예고편에서 느낄 수 있었던 스릴러 영화 특유의 쫄림을 극장에서 보면 더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관람하고 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영화, 이야기 전개에 허점이 많습니다.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고 영화가 끝난 뒤 돌이켜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일절 할 수 없게 만드는 몰입감이 상당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집에서 뛰어넘기로 대충 보면 '뭐 같지 않은 영화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영화관에 앉아 이 영화를 감상한다면 결코 여유 있게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영화이지요.
특히나 현실감 넘치는 회사 생활에 대한 이면을 이야기 하는 부분에선 소름이 돋곤 합니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 직장 내 왕따, 인턴과 인턴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쟁, 첫 회의에 참여 했을때의 뿌듯함, 사내 연애 등은 '감독이 회사를 실제로 다녀본 건가?' 생각이 들정도로 현실적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물론! 잠실 사는 인턴사원이 용산이 멀어 회사 앞에 자취하는 등에 오바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이 정도면 잘 표현되었지요.
영화 <오피스> 감독 및 배우들
관객에게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드는 일등공신에는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이 있습니다.
나홍찬 감독의 <추격자>, <황해>와 <작전>, <내가 살인범이다> 등 주로 스릴러 장르 영화를 각색한 신인 홍원찬 감독의 연출은 스릴러 장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영화인답게 쪼여줄 때 쪼여주고 풀어줄 때 풀어주는 긴장감 높은 연출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소름 돋았던 부분은 2015년 대한민국 회사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실제 일들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잘 보여준다는 것이지요(물론 과장된 부분도 있습니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현 직장인인 필자는 '김부장은 누구랑 똑같네~', '홍대리는 고대리랑 하는 짓이 똑같구먼', '저 인사과장 개!#$#^'과 같은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 더욱 몰입되더군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긴장감 빼고는 스토리상 완성도 높은 영화는 아니라는 평도 가능한 영화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밀도는 떨어지고 동시에 이해가 쉽지 않은 장면이 연달아 나오며 관객들은 초반 긴장감을 잃어가고 실소를 머금게 됩니다. 아무래도 신인 감독의 입봉작인 만큼 다음 작품에선 좀 더 밀도 높은 영화를 기대해 봅니다. 최소한 관객의 절반 이상이 수긍할 수 있는, 혹은 여운을 남긴다던지...
그래도 부족한 연출을 채워주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을 꼽을 수 있습니다.
흔히 관객을 불러모으는 스타 배우는 없지만, 최소한 어설픈 연기는 하지 않는 배우들로 이루어진 출연진은 각자의 캐릭터를 살린 연기로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해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과 <설국열차>로 저에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배우 고아성의 학생을 벗어난 성인 연기와 주로 보스의 역할로 필모그래피를 채운 배우 박성웅의 형사 연기는 특별하진 않아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습니다.
주로 단역을 맡았던 SBS 배성재 아나운서의 형 배성우는 많이 나오진 않지만 씬스틸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또한, 회사 동료들로 나오는 조연 배우들 역시 크게 튀지 않고 주연을 받쳐주는 안정된 연기를 보여줍니다.
주연배우 고아성의 연기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관객이 초반에 영화에 몰입되었느냐 아니냐에 차이 인듯싶습니다. 초반 영화에 흐름에 빠져들었다면 그녀의 연기가 어색하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회사를 아직 다녀보지 않았거나 전형적인 한국 기업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쉽게 빠져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결국 '고아성은 왜 저리 오바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수 있지요. 소기업 중기업 대기업은 물론 한국 기업, 글로벌 기업 등 많은 사회생활을 경험해 본 필자의 생각으로는 한국계 대기업에 다니는 신입 사원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 영화를 보자마자 적은 한줄 코멘트
- 스타 배우 없어도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실력파 배우들의 출연으로 영화의 몰입도가 좋다
- 특히 '괴물'때부터 나를 사로잡은 고아성부터 배성재 아나운서의 친형 배성우의 연기가 눈을 사로잡는다
- "제가 살려고 일하는 건지 죽으려고 일하는 건지 모르겠어요"라는 대사는 모든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릴거야...
- 왜 회사의 부장님들은 늘 화가 나 있는 것일까...
-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이 영화가 스릴러로써 충분한 재미가 있겠구나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고, 예상 그대로 관객을 쪼는 연출이 일품이다. 하지만 스토리 전반을 놓고 봤을때는 퍼즐이 허술하다. 마치 1000피스짜리 퍼즐인줄 알고 샀는데 열어보니 100피스 짜리여서 허무하고 그런 느낌 같은 느낌
- 요즘 한국 영화에 충무로에 위치한 '극동빌딩'이 촬영장소로 대세인가 보다. 영화 베테랑에선 유아인의 회사로 나오더니 이곳에서도 사건이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빌딩으로 나온다(영화에선 용산에 위치한 회사로 나오고 실제 촬영은 부산에서 했으나 충무로 극동빌딩이 확실)
- 그래도 여하튼 어느정도 예상이 되는 스토리를 쪼게 만드는 신인 감독의 연출력엔 박수를
- 지각에 대한 공포, 직장 내 왕따, 부장의 횡포, 인사부에서 똑같은 멘트들까지. 각본을 직장인이 썻나 싶을 정도로 현실이 반영되어 있는 디테일에도 박수를
- 개인적으로 주변에 김병국 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 혹은 지인이 있다면... 함께 관람하시면 재미가 100배 상승합니다. 전 실제로 시사회에 김병국 과장님과 함께 가서 봤...
- 대한민국 직장인 모두 화이팅 입니다...ㅠㅠ
평점: ★★★
한줄평: 회사는 '너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무서운 곳이다'라는 것을 현실에 녹여 보여주니 더욱 찌릿하다. 스릴러 특유의 쪼는 연출을 잘 표현해 보는 내내 류현진 경기 몰래 보는데 팀장님한테 혹여나 걸릴까 노심초사 두 손가락을 Alt+Tab 키에 올려놓고 보는 것 같은 (재미있으면서) 더러운 느낌. 안 걸리면서 봐서 짜릿하긴 한데 정작 경기에 집중을 못하니 다 보고 나서 '그래서 뭔 내용이야?' 되묻게 되는 이야기가 아쉽다.